‘킹달러’가 왕좌에서 스스로 물러날 수 없는 비밀은 복합적인 요인들에 기인하며, 이는 국제 금융 시스템의 본질적인 특성과 미국의 예외적인 지위에서 비롯됩니다.
킹달러 왕좌의 비밀: 스스로 물러날 수 없는 이유
-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의 지속:미국 예일대 교수 로버트 트리핀이 1960년대에 제기한 ‘트리핀 딜레마’는 기축통화가 직면하는 본질적인 모순을 설명합니다. 달러가 전 세계에 널리 퍼지고 국제 거래에 원활하게 쓰이려면 미국은 지속적으로 무역 적자를 통해 달러를 공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달러가 많이 풀리면 달러 가치 하락과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딜레마입니다.
- 과거와 현재: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후에도 미국은 무역 적자를 감내하며 세계 경제에 달러를 공급했고, 이는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즉, 미국은 상품 교역에서 적자를 본 대가로 ‘기축통화 발행’이라는 특권을 누려왔습니다.
- 스스로 물러날 수 없는 이유: 미국이 무역 흑자를 내어 달러 공급을 줄이면 국제 유동성 부족으로 세계 경제가 위축되고, 이는 다시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미국은 세계 경제의 안정성을 위해 어느 정도의 무역 적자와 달러 공급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 대체 통화의 부재 (The “No Alternative” Problem):달러를 대체할 만한 통화가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달러 패권의 가장 큰 비밀이자 핵심입니다.
- 안정성과 유동성: 국제 기축통화가 되려면 압도적인 경제력뿐 아니라, 해당 통화가 발행되는 국가의 정치적 안정성, 금융 시장의 깊이와 유동성, 그리고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입니다. 유로, 엔, 위안화 등 어떤 통화도 아직까지 달러만큼의 포괄적인 안정성과 유동성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모두가 지는 게임”: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달러를 외환 보유액으로 가지고 있고, 국제 무역 및 금융 거래의 상당 부분이 달러로 이루어집니다. 만약 달러의 가치가 급락하거나 신뢰를 잃으면 전 세계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지며 ‘모두가 지는 게임’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 사회는 달러의 급격한 몰락을 원치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정치적 영향력:달러의 힘은 단순히 경제력뿐만 아니라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외교적 영향력에서도 나옵니다. 미국은 달러를 금융 제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국제 질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달러의 지위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합니다.
- 발달된 금융 시장과 인프라: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깊이 있는 금융 시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 자본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가고, 달러화 자산은 가장 안전하고 유동적인 투자처로 인식됩니다. 이 발달된 금융 인프라와 결제 시스템은 달러의 국제적 지위를 견고하게 합니다.
- 신뢰에 기반한 내쉬 균형: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을 이룹니다. 모두가 달러를 신뢰하고 사용하기 때문에 그 신뢰가 더욱 강화되고,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이 균형은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킹달러’는 미국의 의지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 경제 시스템이 달러에 깊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나기 어려운 구조적 특성을 가집니다. 비록 달러의 위상이 과거만큼 압도적이지 않다는 논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달러를 대체할 만한 강력한 대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킹달러’ 시대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